음악
‘솔 뮤직’은 1950년 대 말, 노예제도 하에서 탄생한 미국 흑인들의 음악으로 리듬 엔 블루스와 가스펠송을 결합한 새로운 음악 장르다. ‘영혼’을 뜻하는 음악인만큼, 어떤 하나의 스타일과 기술이 기준이 되는 음악 장르가 아니며,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소리와 리듬으로 이루어진 음악으로 평가된다. 야마다 에이미의 단편집, 『솔 뮤직 러버스 온리』에서 음악은 꽤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았던 음악은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에서 등장한 Percy Sledge의 ‘When A Man Loves A Woman’인데, 온 몸에 물감을 묻히며 사랑을 나누는 남녀의 사랑은 음악의 경쾌함과 잘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이 소설 내 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처럼 인물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이 무엇인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거나, 끝없는 절망에서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는 탈출구 역할이 무엇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것은 ‘섹스’다. 그들에게 솔 뮤직은 곧 섹스이며, 사랑과 섹스는 곧 서로의 영혼에 대한 애무가 된다. <솔 뮤직 러버스 온리>의 단편들을 섹스라는 기준으로 나뉘어 분석했다.
섹스1: 서로를 애무하다.
섹스는 줄곧 대화로 표현된다. 말과 말로 전달할 수 없는, 서로의 깊숙한 곳에 있는 무언가를 탐닉하며 알아내는 것, 그것이 섹스다. 섹스는 곧 부부의 것이라는 사회적 약속처럼, 그것은 서로에 대한 안정적인 감정을 확인하는 일인 동시에, 자신의 성욕이 아닌 외로움과 일종의 감정을 분출하고 보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 역시 존재한다. 단편집에 수록된 인물들 모두 섹스에 대한 자유로운 관념과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WHAT’S GOING ON」을 살펴보자. 아이다는 클럽, 혹은 바에서 남자들의 시선을 즐긴다. 그녀는 클럽에서 숱한 남자들을 만났고, 그들과 하룻밤을 보냈다. 로드니는 아이다가 만난 남자 중 한 명이다. 아이다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밤의 생활’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아이다는 로드니에 대한 감정을 사랑이라고 정의하지 않는다. 반면 로드니의 생각은 다르다. 아이다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한다. 다른 중년 여성과의 자리를 들킨 로드니는 ‘차를 사기 위해서’라는 변명을 내뱉지만, 아이다는 그에게 결별을 선언한다. 오랜만의 재회에서, 아이다는 로드니에 대해 회상하며 자신의 감정을 다시 확인한다. 아이다가 철없는 기억으로 치부하는 회상 속에서 로드니에 대한 감정은 번뜩인다. 그 감정은 안정된 생활을 이룩한 현재의 삶에서는 없는 것들이다. 아이다는 로드니와의 감정을 그저 단순하게 치부했다는 점을 깨닫게 되며, 그 때 로드니가 보여주었던 모든 것들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다는 ‘이제 나도 자격이 있는 거야‘, 라며 떠난 로드니의 말을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곧 그녀가 철없는 시절로, 혹은 별 것 아니었던 것으로 치부했던 로드니와의 만남이 사랑이었음을 인정하는 순간이며, 로드니에 대한 마음을 열어두는 소통이 된다.
「PRECIOUS PRECIOUS」의 배리는 외톨이, 못난 남자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늘 집에만 틀어박혀 가족들의 걱정을 산다. 친구들은 늘 말이 없이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배리에 대한 이상한 소문들을 만들어내지만, 정작 그는 알지 못한다. 배리가 사랑한 여자는 자니르다. 자니르는 그에게 ‘여신’이다. 단순히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신이 아니라, 그가 다가갈 수 없는 거리와 위치에 있는 ‘신’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리가 자니르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스스로에 대한 위로, 즉 자위행위다. 이 장면에서 배리로 대표되는, 남성이 여성을 대상화하는 프레임이 잘 드러난다. 그것은 성녀 혹은 창녀의 프레임이다. 배리는 자니르를 자신이 다가갈 수 없을 만큼 고결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만들어놓는 동시에 그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반면 상상 속에서는 자니르를 늘 자신을 압도하는 성적인 존재로 만든다. 배리의 자위행위는 오로지 상상으로써 그녀와의 사랑을 이루는 것이며, 그것이 곧 현실로 돌아올 때 허무함은 배가 된다. 자위행위는 소통이 아닌 홀로 내뱉는 독백에 될 뿐이다. 배리는 우연한 기회로 자니르와 만날 기회를 갖는다. 그 과정은 온전히 그의 용기로 이루어진다. 그가 했던 행동 중 가장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것이지만, 배리의 이미지는 이미 주변 사람들의 의견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배리는 오로지 상상 속에서 자니르를 만들어내고, 자니르는 타인들이 내뱉는 말과 소문 속에서 배리를 만들어낸다. 거울 속 배리의 얼굴은 나쁘지 않은 사람으로 변해있었지만, 그것은 곧 진정한 배리가 아닌, 타인들이 만들어낸 배리가 된다. 그들은 온전히 서로를 이해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PRECIOUS PRECIOUS」의 배리와 「FEEL THE FIRE」의 이반의 행위는 분명 비슷한 지점이 존재한다. 서로에 대한 소통의 맥락이 되지 못한 채, 온전히 한 쪽에서 고여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루퍼스는 소니, 이반과 모두와 친했지만, 늘 이반이라는 여성과, 완전한 사랑의 관계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다. 이반은 사랑했던 소니를 잃는다. 루퍼스는 상심한 이반의 집으로 찾아가고, 소니에 대한 기억의 퍼즐을 맞추며 감정적으로 가까워진다. 루퍼스는 자신이 소니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불경스러운 일임을 알면서도, 소니에 대한 죄책감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다. 루퍼스는 조심스럽게 이반에게 소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꺼내지만 돌아오는 것은 이반의 거친 반응뿐이다. 루퍼스는 우연히 이반의 자위행위 장면을 보게 된다. 이반의 행위는 배리의 행위와 표면적으로는 비슷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배리의 행위는 비어있는 것들을 채워가는 행위다. 배리는 자니르에 대한 표면적인 것들을 맞추어가는 것으로 자위행위를 시작한다. 반면 이반에게 소니는 이미 완성된 것들이다. 그녀의 자위행위에는 사랑과 추억이 있고, 서로 몸을 섞었던 따뜻함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 순간의 사고로 끝나버리고 만다. 이미 완성되어 있던 것들이 사라졌을 때 남은 공허함, 이반의 자위행위는 그러한 공허함에 맞서는 채우기의 과정이 된다. 루퍼스는 이반의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자신의 존재를 믿는다. 둘은 몸을 섞는다. 그것은 곧 서로에 대한 것을 확인하는 작업인 동시에, 서로의 깊은 곳에 간직한 공허함을 채우는 과정이 된다.
이반에게 루퍼스가 있다면,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의 윌리 로이 역시 주인공 ‘나’에게는 그러한 존재로 기능한다. ‘나’는 윌리 로이의 등장을 반기지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 매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이미 마이크라는 남자친구가 있다. 윌리 로이는 ‘나’의 그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섹스가 아닌 대화를 한다. 그와의 섹스 도중, ‘나’는 그림에 대한 고뇌와 미래에 대한 회의감을 털어 놓는다. 윌리 로이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간다. 윌리 로이는 섹스가 가진 힘을 알고 있다. 무분별해질수록 서로를 파고드는 지점들은 많아질 것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그는 사랑은 하더라도 섹스는 하지 않을 수 있다고 확신하며, 섹스를 전략적으로 계획하고 활용한다. 반면 ‘나’는 윌리 로이에게서 받았던 따뜻함을, 윌리 로이가 자신을 이해했던 순간을 섹스로 기억하고 있다. 윌리 로이가 떠났을 때, ‘나’는 어느새 완성되어 있는 캔버스를 본다. 그녀가 그리고자 했던 그림은 윌리 로이와의 섹스로 완성된다. 그것은 곧 대화였으며, 그녀의 고뇌와 공허함을 채워주었던 위로였던 셈이다. 그림은 그녀와 윌리 로이가 함께 그린 것이다.
섹스2: 한계를 확인하다.
위에서 언급했던 네 작품들이 ‘위로’라는 이름의 섹스를 보여주고 있다면, 다음 네 작품ㅇ의 키워드는 한계다. 섹스는 자신의 한계, 관계의 한계를 확인하는 탐색이 된다. 그들은 온전한 대화와 서로에 대한 확신 대신 허무의 늪으로 빠져든다. 서로에 대한 접점을 찾기 위한 노력이 되지만, 정작 섹스 후 그들은 더욱 멀어지며, 결별을 맞고 만다.
「ME AND MRS.JONES」의 윌리는 존스 부인을 사랑한다. 윌리의 친구들은 대부분 존스 부인과 몸을 섞었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들에게 존스 부인은 그들의 호기심과 성욕 해소의 대상이며, 그들이 함부로 폄하할 수 있는 여자가 된다. 윌리는 성 경험이 없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존스 부인의 집에 가게 되고, 존스 부인과 사랑을 나눈다. 윌리는 존스 부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사랑이라고 확신한다. 정작 존스 부인은 다르다. 존스 부인과의 관계가 채 일 년이 되기도 전에 윌리는 이별 통보를 받는다. 존스 부인은 ‘남자의 몸은 반년이면 돼. 그 다음에는 마음이 필요하거든.’(47쪽)이라는 말을 남긴 채로 윌리를 떠나보낸다. 윌리는 존스 부인의 마음을 갈구하지만, 존스 부인은 윌리를 성적인 대상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윌리 친구들의 존스 부인에 대한 평가가 뒤집어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윌리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섹스는, 친구들이 말한 ‘쾌락’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결국 윌리는 존스 부인에 대한 가질 수 없는 한계를 깨달은 뒤 쓸쓸히 집으로 돌아온다.
「검은 밤」의 조니 다크윈 역시 비슷하다. 윌 리가 존스 부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반대로 티나가 조니 다크윈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작품은 전개된다. 티나는 조니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녀는 친구 그로이스와 집단 섹스를 벌이며 쾌락을 만끽하는 삶을 산다. 티나는 조니가 자신이 아는 ‘그런 남자’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며, 조니의 순수함에 빠져든다. 조니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개인적인 것들을 털어놓고 싶어 하며, 한 순간의 쾌락이 아닌 온전한 관계를, 섹스가 아닌 마음을 원한다. 그녀는 그러한 조니의 태도에 부담을 느낀다. 그녀는 조니의 몸에 관한 구체적인 기억 말고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없다.(59쪽)고 말한다. 그녀에게 조니는 그저 경탄을 내뱉을 만큼 탄탄한 몸을 가진 흑인 남자일 뿐이다. 조니는 섹스를 원하지 않는다며, 티나와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의 이야기는 티나가 그를 떠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자신이 농구를 하고 있다는 것,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 그것은 개인적이고 내밀한 것들의 발현이다. 티나는 조니 다크윈을 사랑한다는 어떠한 태도도 취하지 않는데, 왜 눈물을 흘렸던 것일까. 개인적으로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싶다. 첫째는 조니와는 진정한 사랑,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온전한 관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을 알기에 흘린 눈물이다. 두 번째는 조니가 떠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자신이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을 때의 눈물이다. 그것은 사랑이다. 그녀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었다. 두 이유는 결국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MAMA USED TO SAY」 의 브루스 역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확인한다. 대상은 아버지의 여자, 도로시다. (표면적으로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연상시키는 이 인물들의 관계는 흥미롭다. 브루스는 도로시를 사랑하지만, 아버지와의 관계 때문에 그 사실을 밝히지 못한다. 그럼에도 육체적인 관계는 지속된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선을 그어왔던 도로시 역시 암묵적으로 브루스와의 육체적 관계를 동조한다. 그러나 브루스는 도로시의 마음까지는 얻지 못한다. 도로시는 여전히 아버지의 여자이며, 도로시와의 섹스는 그녀가 아버지의 여자라는 것을 확인하는 작업의 반복일 뿐, 그 어떤 의미도 도출해내지 못하는 쾌락의 늪이 된다. 브루스는 도로시의 성적인 매력을 탐미하며 그녀를 성적으로 폄하한다. 그녀 역시 ‘여자’에 불과하다는 것. 이것은 브루스가 그녀를 갖지 못하는 대신 그녀에게 내리는 평가다. 생활은 평화롭고, 여전히 도로시와는 몸을 섞지만 브루스는 도로시의 마음을 얻지는 못한다. 이는 존스 부인을 바라보는 윌리의 시선과 흡사하다.
「GROOVE TONIGHT」 는 어떤가. 커티스가 데니스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커티스의 데니스에 대한 욕망을 그리고 있다. 커티스는 클럽의 디제이다. 작은 유리 상자 안에 갇혀 클럽에서 춤을 추는 남녀를 바라본다. 그는 마치 욕망을 감추듯, 묵묵히 음악을 바꾸고 랩을 만든다. 그의 욕망을 깨운 것은 데니스다. 데니스는 애인이 있고, 다른 남자들 역시 데니스를 성적 대상이 아닌 ‘경외’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데니스는 그러한 남자들의 태도가 맘에 들어하지 않는다. 데니스는 커티스의 시선을 통해 새로운 삶의 국면을 맞이하지만, 정작 커티스는 데니스에게 심한 집착을 보이며 깊은 회의감에 빠져든다. 이미 애인이 있는 데니스를 온전히 가질 수 없다는 생각은 집착을 더욱 심화시킨다. 집착은 곧 폭력이 되고, 데니스와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섹스1이 서로에 대한 모든 것을 확인하고, 탐색하는 작업이라면 섹스2는 공허함을 건져 올리는 과정이다. 공허함은 서로를 가질 수 없다는 암묵적 동의인 동시에, 자신들의 마음의 거리를 인정하는 순간이 된다. 그들에게 섹스는 쾌락이 아닌 허무로 빠져드는 늪이 된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네 작품들 중 대부분 그러한 절망을 경험하는 것은 남자라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보인다. 여성들은 남성들에 의해 철저히 대상화 되어있으며, 그녀들을 온전히 가지기 위한 방편으로 섹스를 선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온전히 한 개인으로써 존재하고, 섹스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기억에 남는다. 또한 여성들은 모두 안정된 파트너를 갖고 있다. 존스 부인은 남편을, 티나는 약혼남을, 도로시는 남편을, 데니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모두 사랑하는 관계에 있어 나름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인물들인 동시에, 나름의 일탈을 꿈꾸는 인물들로 나타난다. 그녀들의 삶은 남성들에게 가질 수 없는 보석과 같은 기능을 하는 동시에, 성적인 대상으로써의 폄하와, 질투와 분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온전한 허무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도착적으로 섹스를 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더욱 큰 허무함의 틀 뿐이다.
글을 마치며
섹스라는 기준을 통해 거칠게 작품들을 분류하며 놓친 것들 역시 많았다. 우선 야마다 에이미의 거침없는 성애묘사는 탁월하다. 마치 인물을 탐닉하듯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묘사들은 특히 섹스를 비롯한 사랑의 과정에서 탁월한 포착을 보여준다. 또한 다소 가벼워 보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적 자의식을 갖춘 신선한 표현들 눈에 띄었다. (BULL SHIT!!!!) 이국적인 배경과 인물들의 명칭 역시 새롭다. 이국적이면서도 퇴폐적인 분위기의 공간과 인물들은 야마다 에이미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과 잘 어우러지는 동시에, 간접적으로나마 사랑과 섹스에 대한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각각의 단편들은 잘 읽히는 소설인 동시에, 단순히 섹스에서 그치지 않은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무언가는 위에서 언급했던 ‘솔 뮤직’의 정의를 빌려 말하고 싶다. ‘영혼’을 뜻하는 음악인만큼, 어떤 하나의 스타일과 기술이 기준이 되는 음악 장르가 아니며,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소리와 리듬으로 이루어진 음악. 이들에게 사랑과 섹스는 솔 뮤직이며, 그들의 본능과 표현에 가장 밀착한 표현의 형태로 남아있었다. 다양한 사랑의 양태와 세밀한 감정들은 과감한 성애묘사와 자극적인 문장들 사이에서 온전히 살아남아, 독자들을 반기고 있었다.